부여융
인물 · 615년 ~ 682년
부여융은 인물입니다. 지휘관 2 · 시기 2 · 부모 1 모두 5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부여융은 11월 당의 낙양(洛陽)에 도착했다. 당 고종은 헌부례(獻俘禮)를 치른 후 의자왕 등을 사면해 주었지만, 의자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하고 낙양 북망산(北邙山)에 묻혔다. 그리고 부여융에게는 국가의 창고를 담당하는 사가경(司稼卿)의 벼슬을 내렸다. 이후 3년 간 부여융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백제에서는 멸망 직후부터 부흥군이 봉기하여 나당연합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백제의 부흥군들은 남잠성(南岑城)과 정현성(貞峴城)을 차지하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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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이어진 것 5
관련 인물
부모
관련 사건
지휘관
시대와 자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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