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서
인물 · 1650년 ~ 1735년
최규서는 인물입니다. 시기 2 · 대항 1 · 참여 1 모두 4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최규서는 1650년에서 1735년까지 생존한 조선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주이며 광주 출신이다. 그는 숙종 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 정언, 이조좌랑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함경남도 암행어사로서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양주목사, 전라도관찰사, 강화유수, 개성유수 등 외직에서 민정을 다스렸다. 또한 대사성, 대사간,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등 중앙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우부빈객, 도승지, 부제학, 대제학, 판돈녕부사, 지중추부사 등을 겸직했다. 1723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소론 계열이었으나 김일경 중심의 과격 숙청에 반대하고 김우항 등과 함께 노론 대신들을 구하려 했다.
연표
이어진 것 4
관련 사건
대항
참여
시대와 자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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