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대산루
유물·문화재
상주 대산루는 조선시대의 유물·문화재입니다. 소재지 1 · 시기 1 모두 2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상주 대산루」는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낙향한 후 우산리에 들어와 은거하고 학문을 닦는 장소로 1602년에 처음 짓고 1778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진 누정 겸 서실(書室)이다.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학문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 17세기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는 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대가로 불렸으며, 류성룡(柳成龍)의 3자인 류진(柳袗)을 비롯하여 모두 107명의 제자를 배출함 상주 대산루는 5량가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배산임수 배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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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尙州 對山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