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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

사건 · 1920년 ~ 1920년

청산리 전투는 일제강점기의 사건입니다. 참여 39 · 발생 장소 12 · 관련 12 · 시기 2 등 모두 66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또는 국내 한정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은 1920년 10월 김좌진, 나중소(羅仲昭), 서일, 이범석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을 주축으로 한 만주 독립군 연합부대가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 간도에 10여 차례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벌인 전투다. 중국 마적이 일으킨 훈춘 사건을 계기로 만주에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게 된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10월 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내의 여러 지역에서 교전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독립군은 일본군과 교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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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靑山里大捷 · 靑山里戰鬪 · 청산리 대첩 · 청산리 싸움 · 청산리대첩 · 청산리독립전쟁 · 청산리전투

이어진 것 66

참여

외 9개

발생 장소

상위

시기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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