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인물 · 1537년 ~ 1599년
권율은 조선의 인물입니다. 지휘관 7 · 결과 3 · 참여 3 · 시기 2 등 모두 20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임명되어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도 한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어사 곽영(郭嶸)의 중위장으로서 서울을 수복하기 위하여 북상했다. 전라도 순찰사 이광(李洸)도 대군을 이끌고 한성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광은 권율의 조언을 듣지 않고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대패했고 권율은 광주로 돌아가서 다시 공격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귀환 후 군사들을 재결집한 권율은 다시 한성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동복현감 황진(黃進)과 함께 금산군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군대와 이치에서 싸워 승리했다. 이를 이치전투(梨峙戰鬪)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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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권 율 · 권률 · 충장공 권율
주요 사실
연표
- 1392년 ~ 1897년조선
- 1592년용인 전투
- 1592년웅치 전투
- 1592년이치 전투
- 1592년 ~ 1598년임진왜란
- 1593년독성산성 전투
- 1593년 ~ 1593년제2차 진주성 전투
- 1593년행주대첩
- 1597년명량 해전
- 1597년 ~ 1598년울산성 전투
- 1597년칠천량 해전
- 1598년 ~ 1598년왜교성 전투
이어진 것 20
관련 인물
부모
관련 사건
지휘관
결과
참여
시대와 자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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