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탁
인물 · 1871년 ~ 1938년
양기탁은 인물입니다. 참여 5 · 참여 4 · 시대 4 · 직위 3 등 모두 29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양기탁은 한말 계몽운동 시기 대한매일신보 총무로부터 시작하여 1936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이르기까지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에 한 평생을 바쳤다. 운동의 영역도 대한매일신보의 언론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만주의 무장단체를 거쳐 임시정부에서 활동에 이르기까지 광범하여 한국 독립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영어와 인연을 맺다 양기탁은 서북지방 출신이다. 그는 1871년 평안도 평양 소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의종(宜鐘)이었으며 호는 우강(雩岡)이었다. 그는 15세 때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하였다. 1885년 제중원이 세워지면서 외국인 의사를 보조할 사람이 양성하기 위해 제중원 내에 일종의 외국어학교가 부설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문서를 줄인 글입니다
다른 이름 · 량기탁 · 양의종 · 우강 · 우강 양기탁
주요 사실
연표
- 1904년보안회
- 1905년애국계몽운동
- 1906년 ~ 1911년신민회
- 1907년 ~ 1908년국채보상운동
- 1911년105인 사건
- 1919년 ~ 1945년대한민국 임시정부
- 1922년통의부
- 1923년 ~ 1924년의성단
- 1924년정의부
- 1926년고려혁명당
- 1926년 ~ 1929년민족유일당운동
- 1927년국공 내전
- 1929년국민부
- 1937년 ~ 1945년중일 전쟁
이어진 것 29
관련 인물
배우자
관련 사건
피해
주도
참여
결과
관련 단체
참여
결과
시대와 자리
시기
관계망에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