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인물 · 1894년 ~ 1947년
장덕수는 인물입니다. 참여 20 · 시기 16 · 직위 11 · 관련 7 등 모두 58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장덕수(張德秀, 1894년 12월 10일 ~ 1947년 12월 2일)는 일제강점기의 정치인, 언론인, 교수이다. 독립운동가 겸 언론인 장덕준의 동생이자 독립운동가 장덕진의 형이다. 본관은 결성(結城), 호는 설산(雪山)이다. 1916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학사학위 취득 후 일시 귀국했다가 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 상하이 임시 정부에 가담했다. 다시 귀국했다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전라남도 하의도에 유배되었지만 여운형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1923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부사장을 역임하였다.
다른 이름 · 張德秀 · 설산 장덕수
이어진 것 58
참여
- 2·8 독립선언
- 3·1 운동
- 강연과 영화의 밤
- 국민총력조선연맹
- 군축회의
- 대한혁명단 조직
- 대화숙
- 동아일보 정간사태
- 동아일보 창간
- 상하이 임시 정부
- 서울청년회 조직
- 시국재인식,생활쇄신을 위한 순회강연
- 신한청년당 조직
- 일장기 말소 사건
- 장덕수 암살
- 장덕수 피살 사건
- 한국민주당 창당
- 한민당 선거 전략 수립
- 건국 실천원 양성소
- 건국 실천원 양성소 소원
직위
- 대통령 권한대행 겸 내각 수반
- 동아일보사 부사장
- 동아일보사 주필
- 동아일보사 초대 주간
- 보성전문학교 교수
- 부대표
- 비상국민회의 주비위원
- 사상보국연맹 경성분회 제4분회장
-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 조선청년연합회 대표
- 황해도민회 초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