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단체·국가·왕조 · 1911년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의 단체·국가·왕조입니다. 원인 5 · 결과 5 · 원인 2 · 원인 1 등 모두 16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1910년 3월 신민회(新民會) 총감독 양기탁(梁起鐸)은 자신의 집에서 신민회 간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국외에 독립군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독립군기지를 개척하기 위해 각 지역의 담당자를 선임하였는데, 이회영(李會榮)은 서간도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이회영은 즉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경비 마련에 착수하였다.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가 망하자, 9월 이회영은 독립군기지를 물색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동녕(李東寧)·장유순(張裕淳) 등과 함께 상인으로 변장한 이회영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일대를 시찰한 뒤 11월 귀국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문서를 줄인 글입니다
다른 이름 · 신흥강습소
주요 사실
- 시대
- 일제강점기
연표
- 1906년 ~ 1911년신민회
- 1910년 ~ 1945년일제강점기
- 1919년3·1 운동
- 1919년북로군정서
- 1919년 ~ 1922년서로군정서
- 1919년의열단
- 1920년 ~ 1921년대한독립군단
- 1920년 ~ 1920년청산리 전투
- 1940년한국 광복군
이어진 것 16
관련 인물
원인
관련 사건
원인
결과
관련 단체
결과
원인
시대와 자리
시기
관계망에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