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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일제강점기청산리 전투

청산리 전투

사건 · 1920년 ~ 1920년

청산리 전투는 일제강점기의 사건입니다. 장소 12 · 지휘관 8 · 참여 7 · 원인 5 등 모두 55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북간도 지역은 20세기 초 이주한인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던 곳이었다. 이주 한인들은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강고하게 내리고자 교육기관을 먼저 설치하였다. 그것은 서당이라는 전근대의 교육기관과 서전서숙이라고 하는 ‘북간도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과 같은 근대적 교육기관들의 설립으로 표면화되었다. 1906년 서전서숙이 설립되면서 북간도에도 근대적 민족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기울어가는 것을 본 이상설은 국외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북간도 용정에 근대적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하였다. 설립 초기 이상설은 학생 모집의 어려움에 봉착하자 김학연과 남위원을 통하여 학생들을 모집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문서를 줄인 글입니다

다른 이름 · 靑山里大捷 · 靑山里戰鬪 · 청산리 대첩 · 청산리 싸움 · 청산리대첩 · 청산리독립전쟁 · 청산리전투

주요 사실

시대
일제강점기 · 1920년
장소
중화민국 · 지린성 · 허룽시 · 고동하 · 고등하 · 만록구 외 6

연표

이어진 것 55

관련 인물

지휘관

참여

관련 사건

원인

결과

상위

관련 단체

교전

원인

결과

참여

관련

관련 유산과 작품

소재로 다룸

시대와 자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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