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사건 · 1907년 ~ 1908년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의 사건입니다. 참여 30 · 시기 3 · 발생 장소 2 모두 35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제공한 차관 1,300만원을 국민들이 갚고자 한 운동으로, 김광제, 서상돈 등이 제안하였다. 1907년 2월 경상북도 대구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김광제, 서상돈, 윤필오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조선통감부가 베델이 모금액 중 2만원을 사적으로 투자했다가 원금을 받지 못했다는 괴소문을 퍼뜨리는 등 방해를 일삼으면서 운동은 소멸되고 만다.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Archives of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은 201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른 이름 · 국채 보상 운동
이어진 것 35
참여
- 양기탁
- 김광제
- 서상돈
- 윤필오
- 고정주
- 곽종석
- 권동진
- 김규진 (서화가)
- 김종한
- 김창숙
- 대한제국 고종
- 심상훈
- 안중근
- 유길준
- 유동열
- 윤웅렬
- 윤효정
- 의민황태자
- 이도재
- 이상재
- 이용구
- 이용직
- 이종일 (1858년)
- 이종학
- 이준
- 임치정
- 장길상
- 장지연
- 한규설
- 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