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환국 정치
해설 · 2026-10-05
예송으로 커진 당쟁 위에서 숙종이 경신·기사·갑술의 세 차례 환국으로 정권을 통째로 바꿔 가며 왕권을 세운 과정과, 그 속에서 노론과 소론이 갈라진 사연을 따라갑니다.
예송이 남긴 판
효종과 효종비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을 때, 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두 번 맞섰다(예송). 1674년의 두 번째 논쟁에서 현종이 남인의 손을 들어 주면서 남인이 조정에 대거 진출했다. 그해 열네 살로 즉위한 숙종은 이렇게 남인이 쥔 조정을 물려받았다.
환국이란 무엇이었나
숙종은 재위 46년 동안 정권을 맡은 당파를 한꺼번에 갈아 치우는 일을 여러 번 했다. 이를 환국이라 한다. 신하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본 숙종은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내세우고 물리치는 방식으로 왕권을 세웠다.
경신환국 — 남인의 몰락
1680년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이 할아버지의 시호를 받는 잔치를 열었다. 비가 오자 숙종은 왕실의 기름 천막을 보내려 했는데, 허적이 이미 가져간 것을 알고 크게 노했다. 숙종은 곧바로 군권을 서인에게 넘기는 인사를 단행했고, 외척 김석주가 서인과 손잡고 남인을 몰아냈다(경신환국).
경신환국 뒤 서인은 남인을 얼마나 엄하게 처벌할 것인가를 두고 갈라졌다. 여기에 스승 송시열과 제자 윤증 사이의 다툼이 겹치면서, 송시열을 따르는 노론과 윤증을 따르는 소론이 나뉘었다.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1689년 숙종은 후궁 장씨가 낳은 아들을 서둘러 원자로 정했다. 송시열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자 숙종은 그를 삭탈관작하고 결국 사사했으며, 서인은 대거 쫓겨나고 남인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기사환국). 왕비 민씨도 폐위되었다.
그러나 숙종은 곧 폐비를 후회했다. 1694년 노론 외척 김춘택과 소론이 폐비 복위를 꾀하다 고변을 당했는데, 남인의 영수 민암이 이를 빌미로 옥사를 일으키려 하자 숙종은 오히려 남인을 내쳤다. 폐비는 왕비로 돌아왔고 소론 정권이 들어섰다(갑술환국).
마지막 장면
다시 희빈으로 내려간 장씨의 이야기는 1701년에 끝났다.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희빈이 신당을 차려 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숙종은 희빈을 자진하게 했다(무고의 옥). 환국으로 왕권을 세운 숙종의 시대는 그러나 노론과 소론의 깊은 골을 남겼고, 그 골은 다음 왕대의 신임사화로 터져 나왔다.